현재진행형인 고대도시 치첸이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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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인 고대도시 치첸이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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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인 고대도시 치첸이트사

 

안혜경 <시인> 

 

 

메리다 시내는 한나절 걷지 않아도 시내의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아서 좀 심심할 듯하지만 시 근처에 크고 중요한 유적지가 두 곳이어서 사흘을 머물러도 한가하게 보낼 겨를은 없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욱스말이 있고 동쪽으로 좀더 멀리 나가면 치첸이트사가 있다. 이 유적지 역시 드넓은 밀림에 둘러싸인 멕시코에서 에스파냐 정복 이전 시기의 중요한 유적지이다. 유적지 입구에 오니 대형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수십대나 있고 관광객들도 욱스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유적지의 입구 자체가 쇼핑몰로 되어 있어 몰안에 각종 식당이나 기념품 가게 등 편의시설이 있고 사람들도 많아서 이건 죽은 고대도시가 아니라 현재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활기찬 고대도시의 느낌이었다. 유적지 안에도 이런 느낌일까. 이런 기대는 하고 싶지 않은데 무거운 마음으로 숲길을 한참 걸어가니 주위를 거만하게 내려다보듯 솟아 있는 9층의 테라스로 이루어진 계단 모양의 피라미드가 앞을 가로막는다. 피라미드 앞의 광장을 중심으로 넓게 자리잡은 들판에 멀리 건축물들이 보인다. 얼마나 넓은지 푸른 잔디 광장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도 멀리서 자그마한 인형으로 보일 뿐 뜨겁고 하얗게 내리쬐는 강한 햇볕 아래 모든 것은 환상처럼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아른아른거렸다. 책에서나 보아왔던 그 유명한 치첸이트사에 발을 딛고 서 있으니 그런 환상에 빠질 법도 하였다.  


치첸이트사의 매력은 마야 문명과 톨테카 두 문명의 만남이라고 한다.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신전 앞에 놓여진 차크몰 조각상이었다. 비의 신 차크의 조각상이 반은 앉아 있고 반은 누워 있는 모습인데 제물이 된 사람의 심장을 놓기 위한 얕은 쟁반이 배 위에 놓여져 있다. 아른아른한 햇빛 아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붉은 심장이 지금도 놓여 있는 듯하다. 눈부신 태양 아래 더위를 먹은 것일까 아니면 백일몽에 빠진 것일까. 토머스 드 퀸시가 아편을 먹고 8시간이나 바다를 바라보며 꼼짝도 안했다는데 혹시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까. 


마야와 톨테카 두 문명의 융합으로 인하여 치첸이트사의 미술과 건축, 신화에 독특한 양상이 나타났고 신화는 결국 무서운 여러 종교의식을 낳았다. 그 의식의 하나를 집행했던 샘이 유적지 북쪽 끝에 있다. 신들을 달래려고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제물로 던져졌으니. 


치첸이트사(샘 부근의 물의 마술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야인은 지름 60m의 샘 부근을 신전 건설의 장소로 선택하였다. 수심 80m의 샘에서 사람뼈, 귀금속 장식품, 의식용 칼 등이 발견되었다. 비의 신 차크를 모셨던 이 샘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가 열렸다.

1885년에 메리다 주재 미국 영사 에드워드 톰프슨이 유카탄 반도 북부의 치첸이트사 마야 유적지를 헐값에 구입했다고 한다. 건축물은 어마어마한 밀림에 뒤덮여 보존상태도 좋았다고 한다. 잠수부까지 고용하여 북쪽 끝의 샘을 조사한 결과 제물의 샘에서 사람뼈와 황금, 구리, 비취, 흑요석으로 만든 물건과 토기를 발굴하였다. 실제로 유적지가 멕시코 정부 관할 아래 들어온 것은 2차 대전 후라고 한다. 

                              
치첸이트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879년의 것으로 마야족의 한 종족인 이트사족이 도시를 건설한 때는 450년경. 그 이후에 이곳으로 온 부족은 아나우악 고원에 문명을 이룩한 톨레크족으로 1000~1200년경에 제2차 도시를 건설하였다. 톨레카 문명의 특징인 대규모 건축과 화려한 장식이 특징인 마야 문명 양식이 혼합되어 치첸이트사의 독특한 양식이 생겨났다. 13세기 중반에 쇠퇴기로 접어들면서 도시는 자취를 감추고 폐허가 되었으나 유명한 이름값으로 인하여 순례지로 번성하였고 1533년에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이 지역을 발견했다고 한다. 


치첸이트사 유적군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피라미드인데 에스파냐인은 이것을 엘카스티요 즉 성채라고 하였다. 세심하고 정밀하게 복원된 엘카스티요는 9층의 테라스로 이루어진 계단 모양의 피라미드인데 꼭대기에 쿠쿨칸 신전이 있다. 이 피라미드는 그 자체가 마야력을 나타낸다. 또한 메소아메리카(멕시코 중부에서 중앙아메리카에 걸쳐 과거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에 있는 다른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돌계단은 경사각이 45°의 급경사이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계단을 오를 때 지그재그로 오른다. 이는 신관이 돌계단을 오를 때 밑에 있는 부족들에게 등을 보이지 않도록 하고 내려올 때는 신에게 등을 보이지 않도록 의도한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또 하나 놀라운 일은 북쪽을 향해 지은 피라미드의 북서쪽에서 해마다 춘분과 추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해가 서쪽으로 지기 직전 테라스 각 단 모서리의 각이 만들어내는 지그재그 모양의 그림자가 돌계단의 가장자리에 비치고 이 지그재그 모양은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 있는 뱀머리 돌기둥과 연결되어 마치 뱀이 돌계단을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는 큰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부족장이자 신이었던 ‘깃털달린 뱀’이란 뜻의 쿠쿨칸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이 현상은 봄의 파종기와 가을의 우기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풍년을 기원하는 종교의식의 하나로 경기를 펼쳤던 구기장의 동쪽에 ‘두개골의 깃발’을 뜻하는 트솜판틀리라는 건축물이 있다. 이 건축물은 산 제물을 바치는 톨레크 족의 관습을 상징하는데 건축물의 옆면에 수많은 두개골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이 위에 울타리를 치고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목을 쳤다.

광장의 동쪽에는 전사의 신전이 있다. 천개의 기둥을 가진 신전이라고도 한다. 신전 정면 아래 60개의 각주가 나란히 서 있는데 이 각 주에 잘 차려입은 전사와 포로의 모습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이 신전이 승전을 축하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신전 앞에도 커다란 차크의 상이 옅은 웃음을 머금고 제물의 심장을 담았던 얇은 쟁반을 안고 있다. 


한낮의 넓은 광장에 하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데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하얀 옷자락을 끌고 다니는 유령들의 모습만 보인다. 소리없는 하얀 비명들을 지르고 있다.

 

백일몽이야 이건 순전히 뜨거운 햇볕 때문이야
피를 뚝뚝 흘리는 심장조차 하얗게 보인다.
이건 분명 토머스 드 퀸시가 보았던 환각일 거야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환각버섯이 공중을 떠돌며 불러일으키는 환각일지도 몰라.
백일몽에 정신이 어질어질하여 기념품 가게에서 아무 것도 사지 못하고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가 새겨진 자석 하나만 겨우 집어들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일까.
넓은 유적지를 정신없이 돌아다닌 탓일까.           
차크 신의 위력이 강한 탓일까. 그렇다면
차크 신이여!
멕시코 여행에 축복을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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